Fernando Botero

<Volume>


2022.11.11-12.09

13, Seolleung-ro 162-gil, Gangnam-gu, Seoul

희망을 담은 볼륨감


유진갤러리와 노블레스 컬렉션은 오는 11월 콜롬비아 출신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의 개인전 <Volume>을 개최한다. 그의 작품 속에 표현된 인물과 정물의 과장된 볼륨감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기존에 인지하고 있던 비례에 대한 상식을 뒤집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끔 한다. 그리고 희화화 된 모습으로 표현된 장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의 삶 속에 숨겨진 희망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1932년 콜롬비아의 메데인에서 출생한 보테로는 13살에 투우사 학교에 보내졌으나 투우의 기술보다는 투우사의 우아한 걸음걸이와 복장 그리고 투우장의 깃발의 형태와 색감 등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이를 그림으로 묘사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한다. 투우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미술공부를 하게 된 그는 19세에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의 미술관들을 답사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명작에서 많은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유럽의 대가들의 업적에 주눅드는 스탕달 신드롬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보테로는 유럽의 미술에 지배당하지 않을 라틴 아메리카 미술의 정체성을 담은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하고자 연구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재해석한 ’12세의 모나리자’ 작품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미의 상징인 모나리자를 크고 살찐 얼굴에 상대적으로 작은 이목구비를 그려 넣어 이색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다. 익숙하던 인물의 낯선 모습에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과 웃음을 자아내게 한 이 작품은 1961년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면서 그를 미술사에서 중요한 한 좌표를 구성하는 작가로서 주목받게 하였다.


볼륨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찬 그의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작가는 남미의 기타인 만돌린에 실수로 물감을 떨어뜨리게 되는데, 서양배를 반으로 가른 형태의 동그란 만돌린의 몸통에 떨어진 물감 한 방울의 자국은 마치 작은 구멍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같은 사물이라도 그 구성 요소의 사이즈의 비율을 달리하였을 때 확연히 달라지는 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기타를 그린 작품에서 공기의 이동 통로가 되는 가운데 구멍을 원래의 사이즈보다 작게 그려 넣었다. 작게 그려진 구멍의 사이즈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타의 몸집은 거대해 보였고, 이렇게 탄생한 불균형한 비례가 만든 낯선 볼륨감은 보테로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일상 속의 정물만이 아니라 그가 영감을 받은 고전과 르네상스 시대의 명작들을 자신만의 볼륨감을 더해 재해석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보테로가 그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한 의도가 이전세대의 작품에 대한 단순한 패러디가 아닌 천재적인 대가들에 대한 깊은 존경을 내포한 조형적 해석을 담고자 한 점이다. 그는 벨라스케스,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에 표현된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찬사를 보내며 그와 동시에 남미 출생의 작가로서의 색다른 시각을 더해서 전통적인 미에 대한 기준을 재해석한다. 여기서 보테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평준화된 단 하나의 가치로 정의될 수 없으며, 각대륙의 다양한 민족이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 가능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 묘사된 팽창하는 볼륨감은 대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추상미술과는 거리를 두면서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형태로 현실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보테로의 표현기법은 두 가지 예술적 사조와 연관되는데, 첫번째로 고단한 현실로부터 벗어난 환상적인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환상주의와 관련 맺고, 두 번째로는 더 나아가 이러한 기법을 통해 사회적 비판이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신구상주의(neo-figurismo)적 특징으로 연결된다. 억압에 대한 반항의 충동과 해방에의 열망 그리고 현실의 도피로 인한 환상적 사고가 모두 혼재된 상황 속에서 탄생한 세기의 명작들은 미술사적으로 그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 시대를 살아낸 보테로에게 현실 속의 장면들은 왜곡된 형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테로의 작품 속 모나리자의 미소너머에는 사회의 리얼리티를 바라본 작가의 시선이 과장된 볼륨감과 변형된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보테로는 자신의 고향인 메데인의 공원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조각을 기증했다. 그러나 폭력단체는 이 조각상 아래에 폭탄을 설치했고 이 폭파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작가는 메데인 시와 협의해 폭파된 조각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기로 한다. 처참한 현장의 보존을 통해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후대에까지 잊지 않고 전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새로운 비둘기 조각을 다시 기증하였는데, 이로서 폭파된 비둘기와 새롭게 재건된 비둘기 조각은 함께 나란히 평화를 상징하게 되었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조국인 콜롬비아의 어둠을 걷어내고자 노력한 그의 공헌에 경외를 표한다. 올해로 90세에 접어드는 미술사의 살아있는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의 삶을 담은 영화 ‘Botero’가 2020년도 가을에 한국에서 상영되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강의 프로그램이 내년 상반기에 한국에서 보테로 파운데이션(Botero Foundation) 주최와 유진갤러리의 진행으로 준비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이번 노블레스 컬렉션의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들을 미리 만나보고 예습해 두는 것은 어떨까.


전시 일정: 2022년 11월 11일~12월 9일, 일요일·월요일·공휴일 휴관 문의 02-540-5588



Volume of Hope


Eugene Gallery and Noblesse Collection are thrilled to present a solo exhibition of Fernando Botero (b.1932), titled Volume. This joint exhibition highlights the artist’s recent works that clearly show the key features of his style. The exaggerated and inflated forms of figures and still objects allow the viewers to get rid of conventional proportion and see the world from a new perspective. Moreover, the scenes depicted with a sense of humor lead the viewers to discover the unseen hope in life.


Born in the city of Medellín, Colombia, Fernando Botero was sent to a bullfight school in his age of 13. However, he was more interested in the way bullfighters walk and dress, and the forms and colors of the flags in the bullring. He used to spend plenty of time describing these in his early paintings. Giving up becoming a bullfighter, Botero visited prestigious art museums in France and Spain where he was shocked by the masterpieces of Renaissance. Alike many artists, he was overwhelmed by the European masters and returned to Colombia with so called “Stendhal Syndrome”. He began to construct his original Latin American world of art, independent from the European culture.


It was Mona Lisa Age 12, which reinterpreted Leonardo Da Vinci’s Mona Lisa that gave Botero a huge public attention in the US. He created this rather exotic oeuvre, transforming the traditional icon of beauty into an obese lady with relatively small eyes, nose and lips. The monumental work which is collected in MoMA, New York in 1961, aroused a great reputation, irony and humor.


Botero’s admiration for volume began with a coincidence. He once spilt a drop of paint on a Mandolin (a guitar-shaped Latin American musical instrument), which for him seemed like a small hole of the instrument. This was his moment of Eureka when he discovered that changing the elements’ proportion yields a completely different impression of an object. In his painting which depicted a guitar he reduced the size of the hole, making the instrument look increasingly bigger than it is usually perceived. This strange volume triggered by imbalanced proportion later became the central feature of his artistic world.


Not only still life, Botero also reinterpreted the masterpieces of classic renaissance era. What he is trying to deliver is not simply a parody of the works in the old times, rather it is his deep respect to the masters with his own representation. He praises Velázquez, Michelangelo, Botticelli, and Leonardo Da Vinci but at the same time he suggests his own standards of beauty as a Latin American artist. He believes that beauty cannot be defined in one unified value. Instead, it flows through time, continents, and ethnicities.


The inflated volume in his works differs from realistic representation but keeps distance with abstract art in terms of exaggerating and distorting forms to reconstruct the reality. This style of Botero is associated with two aesthetic movements: ‘Latin American Illusionism’ that describes scenes of fantasy to deviate from harsh reality, and Neo-Figurismo that criticizes society’s corruption using this technique. For Botero who lived the times, reality must have been seen in distorted ways.


In 1955, Botero donated a sculpture of a pigeon, a symbol of peace, to a park in Medellín where he was born. However, an extremist organization put a bomb under the artwork, resulting many casualties. Botero and the city of Medellín decided to preserve the broken sculpture as a memorial. He donated a new pigeon sculpture next to the earlier one, reinforcing his wish for peace.


Fernando Botero is a living legend in the art history. In 2020, A movie of his life and art ‘Botero’ was screened in Korea. In addition, a lecture program of the artist is scheduled next year with Botero Foundation and Eugene Gallery.


Fernando Botero: Volume, 11 November – 9 December, 2022
Closed on Mondays, Sundays and national holidays.
For more inquiry, please call +82 2 540 5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