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New 5 – 유진갤러리

Brand New 5

[Brand New5] 소장가치전

Exhibition Date :  2012.12.4 ~ 2012.12.13

Artists : 강준영, 김병주, 김유정, 김재용, 박종필, 이윤성, 장지연, Anibal Gomescasseres, Pablo Tamayo, Yosman Botero

매년 ‘잠재력’있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유진갤러리의 ‘Brand new 소장가치전’이 올해로 다섯번째를 맞이한다.

이번 Brand New 소장가치전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남미 콜롬비아 출신의 유망작가들을 만나볼수있다.

한국에서는 선 보인적 없고 뉴욕에서 활중이며 2012 마이애미 아트페어 초정작가로 외국에서 꾸준히러브콜을받고있는작가를포함,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검증된 젊은 작가 10명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지난 4회에 걸친 전시를 통해 신중하게 선정하고 발굴한젊은작가들과,전시후그들의괄목할만한 행보를 돌이켜본다면 이번 소장가치전의 의미과 적중력에 그 믿음이 한층 더해질 것이다.

올해도 실로 ‘신선한’, Brand New 소장가치전이라는 전시 명에 걸맞는 작가들이 소개되며 작가들이 세상에 전하는 그들의 메시지에 함께 눈과 귀를 열수 있는 심미안을 가진 관객들을 초대한다.

강준영

No Place like Home
도자기와 페인팅,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에게 집은 일종의 자화상이다.
어린 시절부터 호주와 미국, 한국을 오가며 경험한 유학생활 그리고 유별난 가족간의 사랑을 통해 각인된 감성은
서정적이면서도 세련된 미감으로 표현된다.
강준영의 작업 속 이미지와 텍스트는 자신의 삶의 경험에 기인한 모든 시간의 궤적들로서, 철저한 사유와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자전적 감성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 자신은 이러한 감성을 한마디로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남녀간의 사랑, 가족간의 사랑, 다가올 운명의 상대,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일상 그리고 미래의 바램 모두를 아우른다. 그가 과거에 경험한 낯선 경험들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면서 소박한 감성이기에 어렵지도 설명적이지도 않다. 항아리에 감각적으로 그려진 드로잉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네버엔딩 스토리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최근작인 Love manual Series는 그가 즐겨 듣는 사랑의 메세지를 담은 음악과 영화로부터 차용된 텍스트들로 이루어져 자기만의 독특한 조형적 언어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따뜻한 언어들을 꼭지점으로 지어나가는 집은 유희적이면서 시적인 따스함을 지닌다.
오늘의 경험은 내일의 기억이 된다. 그는 이미 가진 절반의 행복을 그림으로 풀어냈고, 그가 살고 있는 오늘과 내일의 행복을 마저 그려내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들이 소소하고 내밀한 그의 그림 안에 모두 있다.

김병주

닫혀있는 공간, 사물함이나 닫힌 문 뒤, 막혀있는 벽 뒤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이 생길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공간을 들어내 보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공간의 경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건물이라는 ‘드러나지 않음’의 속성을 가진 대상에 주목하여 작업한다.
건물을 짓는다. 벽을 만들며 공간을 형성한다. 그 벽들은 유리처럼 투명하진 않지만 벽 뒤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리벽처럼 확실하게 안 과 밖을 구분 짓지 못하고 모호한 경계를 형성한다. 이런 모호한 벽들이 만들어낸 안 과 밖으로 구분되지 않는 또 다른 공간들이 서로 충돌하고 중첩되어 건물의 구조를 쉽게 알 수 없게 한다.
이런 벽들에 빛이 투영됨 으로 공간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그림자가 다른 건물에 맺히고 서로 다른 건물의 그림자들이 뒤섞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마치 격자의 모눈종이에 그려진 평면도가 고층빌딩의 거대하고 복잡한 공간을 종이 한 장에 담고 있듯이 전시장 안의 모든 공간들은 경계가 허물어져 그림자로 응축 되어 벽면에 그려진다.
– 작가노트 중에서

김유정

나는 미의식을 통한 창조적 표현활동으로 단지 보여 지는데 의미를 두지 않고, 이미 인식되어진 것과, 자신의 내면을 토대로 사물을 감지한다. 그리하여 사물의 외형을 옮기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심상표현을 위해 대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재구성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이렇듯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감수성과 물질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주관적 사고가 회화 속에 나타난 대상을 통해 표출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 표현 방법의 일환으로 본인은 대상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간접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은유적 표현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였다. 은유는 우리 대부분에게 의미론적 전이를 통해, 즉 하나의 대상을 또 다른 하나의 대상에 견주는 비유적 표현이다.
작품에서 재현되는 이미지들은 화면 속에 외상적 행위 과정을 통해 재구성함으로써 비의와 모순으로 점철된 삶의 지층을 은유를 통해 확장하는 것이다. 작품 속의 이미지들은 형식을 변형시키거나 해체하고 의미를 차연시키는 은유적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그것은 현실을 변형하기보다 현실을 대치하는 모방이며, 모조의 전략 역시 탈맥락화를 위한 은유적 알레고리이다.
작품에서 은유이자 환유인 이미지의 재현은 다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 불안정하고 때론 위태롭기도 한 삶의 알레고리, 자신의 존재가 타인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며 동시에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한 불안한 심리에 관한 은유적 표현이다.
나의 프레스코에는 기법적인 은유도 내재되어 있다. 전통적 프레스코 기법은 회벽이 마르기전 안료로 채색하여 고착하는 것이다. 이 기법을 차용하여 현대적으로 수용하여 확장한, 프레스코의 스크래치적인 표현으로 그려진 음각의 선들은 내면의 상처를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음각 자체가 폭력적 행위를 가하여 생긴 긁이고 파인 그것은 바로 ‘상처’, 즉 ‘외상’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즉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은 파이고, 스미고, 긁히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상처투성이의 피부로 둔갑하는데, 이는 기법적 은유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작품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에 대한 진지한 기록하기와 감성적 사유를 통해 읽어내는 방식으로써, 동시대에 대한 본인(인간)의 상념을 벽면에 은유적으로 각인하고 고착하는 것이다. 심리적인 내면을 은유화하는 것은 상처에 직면하고, 상처를 새롭게 해석해서,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으로써 다의적 의미를 가진다. 결국 이러한 과정이 상처를 치료하는 ‘치유의 도구’로 순환되면서 관람자로 하여금 작가와의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 작가노트 중에서

김재용

오랜 시간 서울을 떠나, 향수에 젖은 채 미국에 살면서, 언제나 집이 그립다.
그러나 정작 한국 집에 있으면 다시 뉴욕 작업실에 가고 싶고 뉴욕 작업실에 있으면 한국 집에 가고 싶다.
그 때문인지 나에겐 어딜 가도 집이 없는 듯하다.
내가 유일하게 안식을 느낄 때는 바로 몸이 부서져라 홀려서 작품을 만들 때. 그럴 때, 나는 가장 편안하다.
나에게 집, 또는 안식처(sanctuary)란 동경의 대상이라서 그런지
어느덧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집을 등에 지고 안식처를 찾아 어디론가 천천히 기어가는 달팽이..
내 작업은 지난 12년 동안 나의 모습을 대변하는 거울이 되어 주었다.
내 속에서 안식과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이 해학적인 달팽이 시리즈 작업으로 인해 위로 받는 것 같다.

– 작가노트 중에서

박종필

Between – The Fresh
박종필의 작품은 단순히 대상에 대한 극사실적 표현에 근간을 둔 작품으로 보인다.
작품 안에는 싱싱한 꽃들이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보여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작품속 생화 안에는 조화가 함께 공존하고
(생화 –실존하지만 언제가는 죽고 조화- 죽어있지만 영원히 살아있는 매체 )
실존하는 대상과 실존하지 않는 대상을 작품 안에 동등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모호한 경계 속에 실재와 비실재, 현실과 비현실, 진짜와 가짜를, 경험케 하고
이는 곧 어떤 대상을 볼떄 그것들이 정의하는 문제에 있어서 본질적인 시각으로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실재와 비실재의 양면성을 같이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박종필은 작품을 통해 관람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뚜렷한 결론을 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해석의 폭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대상이나 사물, 인간은 다양한 의미 혹은 개념들의 조합이며, 이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존재’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하여 대상을 해석하는 것은 오로지 받아들이는 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이는 아는것 만큼 느끼고, 보이는 것 만큼 생각할 수 있고, 느끼는 것 만큼 소통 할 수 있다.
작가는 생화와 조화를 통해 실재와 비 실재의 경계 그 어느쪽 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작품을 주로 보여주지만 근작은 그 경계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생화만을 가지고 표현하는 ‘모든 꽃들’을 제작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좀 더 긍정적 시각을 갖을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윤성

Artist statement
나는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영원한 절정과 카타르시스를 표현하려 한다. 다양한 요소로부터 동기 부여된 이야기들은 욕망과 취향에 의해서 재구성 된다. 과장된 형식들은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 더욱 뚜렷하게 또는, 감추면서 진행된다. 이렇듯 층위를 유희적으로 오가면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생성되며 충족된다.

Torso
연작으로 제작이 되어 질 토르소는, 파손되어 불완전해진 토르소를 발굴하면서부터 느꼈던 조형적 미의 감성을, 사지가 절단되어 분홍색 피를 내뿜으며 몸부림치는 미소녀의 신체로 옮겨 보았다. 어렸을 적 본 어느 애니매이션의 한 장면으로부터 각인된 절단 되어지는 신체, 탈 육체의 본능, 비로소 정신적인 존재로 승화 되는 카타르시스의 순간, 등은 나에게 새로운 조형적 미의 감성을 심어 주었다. 나는 이러한 요소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신체, 미의 이상향을 추구해 나가려 한다.
– 작가노트 중에서

장지연

나의 작업은 대체로, 인간이 감정을 갖고, 또 그 감정을 신체로 느끼는
감정과 물리적인 것의 조화를 드러내는데 두고 있다.
어쩌면 포괄적이며, 단순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이 주제 속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에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은 위로를 받게 되며,
이 작품들을 보는 이에게도,
많은 위로와 공감을 주고싶다라는 마음이 나를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오감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 작가노트 중에서

Pablo Tamayo

Pablo Tamayo 는 그의 작품에는 늘 일정한 주제가 내제되어 있다. 그의 예술 작품에 전통과 기술이 융합된 화법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작품들에 전통, 장인정신과 천업(天業)의 화풍이 짙고, 수치제어 장비와 폭 깊은 컴퓨터 지식에서 베어난 작품들도 전시되어지고 있다. 이런 작품성들이 그의 형상화와 기하적 추상화에 잘 깃들여져 있다.
타마요 작가의 일련의 인물화들에서 시네틱아트(다차원적 환상을 바탕으로 한 예술 형태)의 원리들을 시도하였다. 이 시네틱아트는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추상화에서 움직임의 미학적 표현으로 정의되어졌다. 타마요가 이런 원리들을 형상의 외곽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의 최근 작품들을 보면 빛과 그림자로부터 형상(이미지)들을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채색과 그림은 형상을 드러내기 위하여 표면에 어떤 것들을 덧대면서 완성하지만 그는 형상(이미지)를 만들기 위하여 빛과 그림자로 표현되는 공허함으로 표현한다. 명암을 넣기 위하여 미세하게 그림자를 흔들기도 한다. 이것은 그림자가 있는 그림의 한 표현 방법이기도 하다. 인물화들은 우상이나, 친구나, 예술가나, 영웅이나 악인의 형상들이다.
작가는 관람자와 작품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의 작품 속에 있는 기하적 추상체에 작품의 의미를 불어 넣고 있다. 그 기하학적 테두리는 심하게 왜곡되어 있어, 작품을 바라보는 바른 구도를 찾으려거나 관람자와 작품 그 자체를 감상하는 관람자 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작품과 관람자들 간의 묵언의 대화로 이끄는 것이다. 관람자의 마음은 그려진 선들과 외형 만이 암시와 실마리인 것처럼 작품을 완성시켜가고 있다. 관람자와 보여지는 것과, 그 크기, 그 공간 사이의 관계가 이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 것이다.

Pablo Tamayo has a constant theme in his work; exploring ways of combining tradition and technology in art. A strong sense of tradition, craftsmanship and trade and a deep knowledge of computer science and numerically controlled machinery are ever present in his work. These characteristics can be seen in his two bodies of work; figuration and geometric abstraction.
In his portrait series Tamayo appropriates principles of cinetic art, which where used in the late 60′s and early 70′s defined as the exploration of the aesthetics of movement in abstract art. He brings these principles into the realm of figuration. In his latest series of works he explores the creation of images from light and shadow. Traditional painting and drawing in its entirety is done by adding materials to the surface to create an image, he explores the absence of materials translated into light and shadow to create the image. He is able to modulate shadows precisely to recreate tones; a way of drawing with shadows. The portraits are images of icons, friends, artists, heros and villains.
In his geometric abstraction body of work the artist explor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pectator and the work to create the “meaning” of the work. The geometry is heavily distorted and only the spectator exploring the work itself and finding the correct angle in which to see the work. This creates a silent dialog between the work and the spectator. The mind of the spectator completes the work as the lines and geometry that are defined are only hints or clues. This relationship between perspective, volume, space and the spectator is what defines this body of work.

Yosman Botero

이 예술인의 작품은 매체 즉, 스케치(선화), 채색, 영상과 설치 미술 등을 통해 색다른 측면에서 탐구(분석)의 도를 넘어선다.
어떤 것이던지, 그의 색다른 탐구 안에서 다양한 도시의 형태가 담겨있는 풍경화법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컴컴한 밤에, 빛(등)을 통해 항상 그 경계에서 흘러 넘치려는 공간을 담은 그 테두리를 표현하는 자아를 그려내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울러, 그의 실험적인 효과들에서 공간을 담으려 유리판을 여러 층 포개면서 2차원 면에 색을 넣어 살아 쉼 쉬는 듯한 입체영상을 만들어 왔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화랑에서 뭔가 찾고 싶은 관찰자의 호기심과 작품의 내면을 아우르는 그 빈 공간의 표현이다.

Made Matter of Empty
The diversified nature of contemporary art allowed to introduce new meanings in art practices that have been identified often with a typology of the sign, the index. The character art display after the seventies relies heavily on its meaning physical relationship with the references, this is the reality of mundane objects. This significance allow works of art act as “fingerprints or signs of an object to which they refer.” The art for as footprint is an indicator that signifies an object. This feature seems to identify much of contemporary art is due to its link with the hierarchy of processes under the vision of the photographic representation.
Made Matter of Emprty is a photographic series where the character and irony are combined to generate a reflection on the crisis of the contemporary aesthetic experience, from a questioning look on the disappearance, where the unfinished and the ephemeral act as elements of great expressiveness.
Stating unseen glances, the disappearance of the viewer from its isolation, the strangeness of a punctum that punctures and we want to share, we note the absence of something that has left in its wake. Made Matter of Empty proposes a sham, a prosthetic reality, but you can only tell the footprint of the spectrum, as we said Barthes Photo. And thus merely denounce the failure of the image registration and recognition as a supposed response to the viewer. Reveals the ineffectiveness and the limits of artistic languages to create the conditions of possibility of any communicative action, demonstrating the ineffectiveness of languages and techniques that have led to a “physical separation of the public and the work.”

2019-01-11T09:01:4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