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SIPREMIUM – 유진갤러리

2014 SIPREMIUM

[2014 SIPREMIUM]

Exhibition Date : 2014.02.26 ~ 2014.03.01

Artists : 곽철, 구주환, 김석, 배준성, 전광영, Anselm Kiefer, Damien Hirst, Paul Noble

1부-선물 및 홈웨어전이라는 컨셉에 맞게 작품을 선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서울옥션 프린트 베이커리와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미술 컬렉션을 보다 부담 없고 즐거운 일상을 만들어 가고, 한정수량만을 제작하여 소장과 수집의 가치를 높일수 있는 작품들은 선보였습니다.

2부- 한국 대표 작가 전광영, 회화에 렌티큘러를 조합한 배준성, 국내외 인지도가 높은 작품을 선보입니다.

곽철

Female Hero

멋진 초능력과 아름다움, 화려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내면에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어둠이 가득한 존재가 바로 작품의 주인공이다.
인간은 극도로 진화한 동물이라 슬퍼도 웃을 수 있고 기뻐도 무표정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벽을 타고 빌딩 숲을 단숨에 오갈 수 있는 초능력처럼 말이다.
여성의 이미지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그리고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선은 세상 어떤 것 보다 아름답다. 한껏 치장하고 멋을 낸 화려하고
아름다운 겉모습은 역설적으로 내면을 더욱 부각시켜 주고 강하지만 여린 그 모습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해 준다.
언제나 나의 작업에 주된 관심사는 인간의 내면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고통과 슬픔, 가면을 쓴 듯 그 것을 감추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끝없는 갈등을 보여주는 그녀는 Female Hero이다.

구주환

소나무가 가져다주는 전통적인 한국적 정서에 이끌려 삼릉을 찾게 되었다.
장구한 세월을 비바람과 눈서리를 이겨낸 소나무가 가진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사진을 통해 그려지길 원했다.
우리 민족이 가진 소나무에 대한 상징성과 심미성이 나만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표현되고 싶어졌다.
소나무가 아침 햇살을 머금고 빛이 나고 푸르릇다.
장맛비에 젖어 내면의 깊은 멋을 드러내기도 했다.
소나무가 가진 특유의 신령스러움과 기상들을 들려다 본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 그 사이를 안개로 채워진다.
그 안개는 소나무를 아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간다.
처음 삼릉의 소나무를 대했을 땐 소나무가 가진 본질에 매료되었지만 점점 안개와 소나무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안개가 점점 가까워져 소나무를 감싸고 그 깊이를 가늠하질 못하게 되면되면 소나무는 더욱 황홀해진다.
소나무는 깊고 아주 긴 숨들을 내쉰다.
깊은 안개와 소나무 그 속에 내가 삼가 관계를 형성한다.

-작가노트

김석

경계에 선 로봇들, 정체성의 물음을 던지다
로봇은 철학과 과학, 예술 등 사회 담론의 여러 분야에서 흥미롭게 다뤄지는 주제 중 하나이다.
첨단 과학은 오래지 않아 정서, 지능, 감각처럼 인간적 요소를 갖춘 고차원 로봇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간 육체 역시 의학과 과학의 힘을 빌어 신체나 장기를 고기능 대체물로 갈아끼울 날이 멀지 않았다.
로봇과 인간이 점차 닮아가게 될 현실을 앞두고 로봇/사이보그/안드로이드 등과
인간, 둘 사이의 정체성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김석의 로봇들은 소재와 주제 양 측면에서 인간과 로봇의 경계, 교차 지점을 다룬다.
우선 만화, 애니메이션이 갖는 환타지적 비현실, 로봇의 정체성이라는 현실 사이의 경계가 두드러진다.
태권브이, 마징가Z, 건담은 인간 능력을 훨씬 뛰어 넘는다.
하늘을 날아 로켓주먹을 쏘고, 악의 힘을 물리치는 일은 한계를 초월하고픈 인간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훨씬 우월하지만 인간을 모방하여 인간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로봇은 항상 인간 아래 있어야 한다.
환상적인 능력을 갖지만 인간의 명령체계에 복종하는 것, 로봇의 현재적 위상이다.
그는 영웅적, 초월적 능력의 대리만족물이라는 원래적 정체성 이면의 또 다른 정체성에 주목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태권브이 연작, 말탄 중세 기사 로봇 등은 구세를 위해 희생하는 고독한 영웅이라는 오랜 신화적 주제의 변주이다.
희생은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가능한, 오직 인간에 속한 영역이다. 손상된 팔을 안고 슬퍼하는 로봇은 연민과 고독감에 빠져 있다.
아기를 안은 성모 혹은 피에타 상을 떠올리게 하는 로봇의 자세는 희생을 홀로 감당하는 영웅의 고독감을 배가시킨다.
슬픔, 고독, 외로움은 기억과 정서를 토대로 하는 인간만의 감정이다.
로봇이 인간고유의 가치를 나눠가질 때, 둘 사이를 나누는 금은 어디에 그을 것인가. 감정은 편리를 위해 제작된 도구,
로봇이 감히 탐해서는 안 될 금단의 열매일지도 모른다.
자기정체성이 소거된 존재들의 정체성 자문이야말로 그의 작품 배면에 깔린 슬픔의 원천이다.
경계에 선 로봇들의 물음은 그가 매질로 사용하는 소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로봇은 레디메이드를 특징으로 한다.
공장에서 동일한 것을 대량생산해야만 필요할 때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재 역시 신소재나 고기능 합금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김석의 로봇은 잣나무의 거친 질감을 살려 수작업으로 깎은 유일한 것들이다.
로봇은 아무 때나 교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나아가 감정과 기억도 있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표면에 입힌 크레파스나 니스의 질감도 나무의 투박한 결과 어울려 자연성을 강조한다.
2, 30대 성인들이 로봇에 열광하는 것은 일면 경쟁적 삶에 지친 현대인의 키덜트적 욕망 을 반영한다.
정글 같은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불안과 피로를 잠시나마
어린 시절에 행복을 주었던 소재로 달래려는 마음일 것이다.
일견 가벼워 보이는 그들의 퇴행 욕망 속으로 삭막한 경쟁사회에 지친 어른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울린다.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버텨나가는 일, 키덜트적 가벼움에는 어깨를 짓누르는 삶에서
잠시 한숨 돌리려는 사회인들의 무겁고도 서글픈 생존전략이 깍지를 끼고 있다.
키덜트 욕망을 겨냥한 상업자본주의의 가벼움은 위험한 지뢰가 될 수도, 유연한 도약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뢰를 피하며 정체성을 확장시켜가는 것, 양자의 균형감각에도 그가 사랑하는 로봇들의 미래가 달려있다.

– 박선영

배준성

19세기 말 영국에서 출간된 유명한 에로 서적 제5장은 ‘관음주의(voyeurism)’에 관한 긴 묘사로 시작된다.
어느 날 정오에 무기 제조상의 아들인 저자의 친구가 그를 자기 부친이 경영하는 작업장 지하실로 데리고 간다.
“그는 날 유리 창문 아래로 데리고 갔다. 나는 창문위로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다리들을 보았다. 나는 즉각 감을 잡았다.
이 지하실은 바로 길 아래로 이어져 있었고, 보도를 덮은 유리포석을 통해 빛을 받고 있었다.
며칠 동안 우리는 이곳에서 종아리와 허벅지들을 감상했다.
우리는 양말대님과 그 위로 삐져나온 살덩이들을 보았다.
그렇지만 다른 나머지 것들은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옆방 열쇠를 찾아내었고,
이 옆방은 유리창이 아닌 쇠창살로 된 창으로 빛이 들어왔다.
그 당시 여인들은 바리를 입지 않았다(…).게다가 페티코트가 유행이었다(…).
아래서 보면 치마 밑이 훤히 들여다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장면의 한 구석도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수 많은 예쁜 엉덩이들을 많이 감상했다.
때로는 다리의 특수한 위치 덕분에 금색, 다갈색, 검정색 털이 보송보송한 여성 성기를 보기도 했으며,
때로는 생생한 불그스레한 피부를 보았다(…).
우리는 또 나이든 여성의 그것들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 장면들을 감상하는 데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여성들이 그들 시선에 그들 해부의 본질적인 것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장면 앞에서 이 두 젊은이들에게 물려온 어쩔 수 없는 열기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열기는 자세히 설명하기엔 낯 Em거운 넘처남 속으로 이끌어 들였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벗은 몸들이 도시의 벽에 영합적으로 아양을 떨면서 펼쳐져 있지 않는가?
한 모스크바 오프닝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느닷없이 솟아나는 음욕과 함께
배준성 인물들이 걸치고 있는 옷을 올리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들의 거칠고 게걸스런 동작은 바로 호기심을 채우려는 것의 동일한 성격이 아니겠는가?
이것들은 바로 이 판타즘이 인간의 심장 속에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여하간, 숨겨져 있는 것을 거칠게 밝히려는 사실이 배준성의 작품들이 순간적으로 점화시킨 깊고.
꺼지지 않는 충동에 화합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들을 이러한 차원으로만 축소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이 작품들은 다소 조롱적 이면서도 절묘하게 암시적인 방식으로 어떤 아카데미 안에서
전문인들에 의해 행해졌던 전통적 방식의 화가 직을 환기 시킨다.
우리는 배준성이 수 없이 그렸던 다비드David와 앵그르Ingres의 그림들 속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적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벗은 몸들은 매우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
때로는 이 몸들은 적당한 포즈를 취한 실제 모델을 보고 그려졌다.
이어서 여러 다른 인물들은 다시 조합되고. 마침내 그려진 화면 위에서만 그들의 의상으로 다시 옷 입혀진 채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배준성은 하나의 동일한 작품 안에서 이러한 긴 과정을 요약한다.
사진적 재생의 차가운 완벽함으로 으리으리한 모델의 조각적 신체는 어떤 이상적 가치에 도달하는데,
이 가치는 옷주름들을 솜씨 좋게 잘 그리는 것으로 만족한 붓의 불완전한 거장의 솜씨와 매우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이 두 기술의 대비는 서구적 의상과 아시아적 몸을 나란히 놓은 낯설음이 또 다시 강조하는 어떤 긴장을 창조한다.
이것은 마치 극동 아시아의 현대 사회의 근원에 존재하는 동서양의 근본적 충돌이 지속적으로 다시 재현 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이 긴장은 때로는 계속 붙들고 있기가 어렵다. 앵그르Ingres, 싸젼트Sargeant, 르펭Repin,
반다이크Van Dyck 외에도 배준성에게는 부게로Bouguereau나 알마 타데마Alma-Tadema식의 치장들의 유혹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조롱은 무엇인가? 우리가 그로부터 멀어져 버린 어떤 회화의 부드러운 무기력과
가장 최근의 사진의 단호함이 충돌하는 이 작품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아카데믹한 회화, 다시 말해서 비난받고 무시당하는 이 회화 직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향수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금년에 그려진 정물화들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현대식 부엌의 보잘것없는 평범함이 바로크적인 꽃이 만발하고, 과일들과 고풍스런 식기들로 채워진 정물화의 배경이 된다.
회화적 인용이 차가운 사진적 사실을 가리면서 솟아난다.
이제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공유된 명확한 상징으로서, 그것은 단지 의미가 비워진 기호 집에 불과하다.
저급한 것이 어떤 새로운 상징성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이 텅 빈 기호들을 엄습한다.
다시 말해 저급함이 어떤 작품 속에 어떤 새로운 차원을 불어 넣어 주는데,
그 작품의 애매모호함은 목하 기승을 부리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 속에 들어있다.

-알랭 사이약 (퐁피두미술센타 사진부장)

2014 SIPREMIU 전광영

전광영

전광영의 부조 회화 작품은 사각 평면에 무한의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어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부조 작품의 외형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무채색의 화면에 작은 면들이 엄격한 기하학적 구조물처럼 긴밀하게 짜여 있는 느낌이다.
우리 고유의 한지를 사용한 표면은 매우 부드럽고 서정적인 분위기이다.
1997년에 제작된 <집합> 시리즈에서 우리는 더욱 시간과 공간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게 된다.
<집합>은 물리적 개체의 모임이면서 동시에 시간을 함축한다.
한지에 둘러 쌓인 하나하나의 덩어리들은 실존하는 개체의 흔적들이다.
즉, 퇴색된 종이의 질감과 색채에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쉽게 확인하는 것과, 작은 반점처럼 보이는 흑색의 글자들,
익명의 편지처럼 우리는 개개인의 체험과 역사를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지로 만든 작은 입방체들을 화면 가득 채워나가는 작업은 마치 베틀을 짜는 것과 같고,
어느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창조해 우리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전광영의 작품이 갖는 독자성은 먼저 그 질료와 특이한 공간개념의 창출에서 찾아진다.
그의 화면에서는 소지로서의 캔버스와 이 위에 덮이는 안료의 작용이라는 종전의 회화적 구성을 찾아볼 수 없다.
한지라는 매재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나 단순히 한지를 소지로 차용하지 않는다.
스티로폼으로 일정한 크기의 삼각모형을 만들고 이를 한지로 싸서
종이 끈으로 묶어진 개체들을 화면 가득히 집합(Assemblage)시키는 것이 일차적인 패턴이다.
하나하나의 개체들은 이렇게 서로 얽혀 거대한 얼개를 만들어 가면서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다시 태어난다.
그것들은 아무렇게나 집합된 것 같으면서도 서로간의 질서와 전체로 향한
구조적 의지를 강화함으로써 마침내 탄력 있는 생명체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2014 SIPREMIU Anselm Kiefer

Anselm Kiefer

Flower Paintings

신표현주의 안젤름 키퍼는 요셉 보이스 이후 최고의 독일작가이며 국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생존해 있는 작가이다.
세계가 불안정했던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태어난 그는 독일의 역사와 신화, 문학, 종교, 나치 시대와 홀로코스트 주제를 다루었다.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던 주제를 다루어 안젤름 키퍼는 칭송과 비난을 받기도 했으며
그의 작품의 특징은 실제 역사 속 장소와 인물들의 이름을 텍스트나 형상으로 나타내고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모래, 밀짚, 나무, 재, 흙 진흙, 납 같은 물질은 홀로코스트의 유골과 전후 폐허가 된 독일 상황울 반영한다.

Damien Hirst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대표주자 데미안 허스트는 미술계뿐 아니라 대중매체의 스타로 떠올라
‘미스터 데스 (Mr. Death)’, ‘악마의 자식(devil child)’, ‘무서운 아이(enfant terrible),
‘컬트 조각가’, ‘잔혹한 현대작가’ 등등 수많은 수식어가 뒤따른다.
허스트의 작품 의도에는 다분히 과대 선전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은,
죽음 속에 숨어 있는 지독한 아름다움, 그리고 아름다움에 내재되어 있는
불가피한 부패를 묘사하는 미술을 목격하는 것이다.
본능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시각적인 도전을 성취해냄으로써
허스트는 동시대 미술가 중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미술가이다.

2014 SIPREMIU paul noble

Paul Noble

2012년 영국 최대의 미술 시상식 ‘Turner Prize(터너 프라이즈)’의 후보에 오른
작가 폴 노블은 주로 기본적인 재료인 연필과 종이만을 사용하며 모노톤의 색감을 나타낸다.
작가는 주로 자신의 가상 세계, 사회의 상하 구조에 대한 자신의 반대 입장을 작품을 통해 표현한다.

2019-01-08T05:59:28+00:00